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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과거 안상홍님 언제부터 하나님의교회역사 떳나?(재림예수님과어머니하나님 희생 신동아보도)

베타22 2013. 12. 25. 02:53

 

하나님의교회가 처음 설립 당시 1960년대 한국은 6 25전쟁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였다고 한다.

1인당 GDP가 최빈국 수준인 65달러에 불과 했고 작은 하우스 처치(가정교회)로 시작였다.

 

그런 하나님의교회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전국 10여 개 지역에서 하우스처치로만 운영되었다.

 

교회를 설립하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이 성장의 밑거름이였다.

안상홍님의 제자들의 회고를 기록한 신동아 2014년 1월호 기록을 살펴보면

 

"안상홍님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함께 했던 그의 생애는 새 언약의 복음으로 전 세계 구원해야 한다는 선지자적 사명에

입각한 희생 그 자체였다. 안상홍님은 교회 운영을 위해 낮에는 돌을 깨는 석수일을 하셨고, 밤에는 교회 식구들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책자를 쓰셨다"라고  기록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길을 걸어가셨단 말인가? 라고 반문하거나 믿기어렵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시지만 성경의 예언따라 사람되어 이 땅에 오신 안상홍님께서는 초림때와 같이 너무나도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인생의 모습을 하시며 복음의길을 걸어가셨다.

세상의 많은 관료들과 우수한 학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림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처럼

너무나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쉽게 알아보지 못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신동아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안상홍님께서는 시간이 날때마다 전국으로 전도를 다니셨다.

말씀을 듣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산간 오지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달려가셨다. 서울에 교회가 생긴 후에는

공부를 가르치시러 올라오시곤 했는데 그러면 말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식구들이 새벽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피곤한 기색없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곤 하셨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고 성공한 목사들을 보면 재물과 권력,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안상홍님께서는 이 땅에 가장 어렵고 가난한 시대에 예언따라 오셔서 초림 때와 같이 진리말씀을 전해주셨다.(요16:7~8,13,요14:26)

초림때에도 몇명의 제자들을 가르쳐 세우시고 예수님께서 하늘 승천 후 성령을 부어주셔서 복음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서

하루에 3,000명 5,000명 회개의 역사가 이뤄졌던 것 처럼 오늘날 하나님의교회에서도 안상홍님 승천이후

복음이 불길이 놀랍게 진행되어 초림때보다도 일곱배나 많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온으로 돌아오고 있다는것이 

교회성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안상홍님은 융숭한 대접 속에서 일생을 보내셨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특히 지금처럼 규모가 커진 교회를 생각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이원순 목사의 회고 내용을 들어보면

"안상홍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경제적으로나 교회 성도들의 믿음으로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교회 형편이 워낙 어려워 식사라도 해보야 국수가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한창 먹성이 좋은 청년들, 학생들에게

면은 다 건져주시고 국물만 드실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죄송할 만큼 대접 받지 못한 삶이셨다"  

 

 

초림때 예수님께서도 사람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시장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며 많은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셨다.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되어 육신의 모습인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우리와 똑같이 고통과 배고품을 느끼셨던 것처럼 안상홍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육신적 고통을 우리와 똑같이 느끼셨지만 당신을 위하기 보다는 항상 자녀들을 베려하시고 섬기시는데 

한 평생의 길을 걸어가셨던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역사에 따르면 1985년 안상홍님이 다윗 왕위 40년 예언 가운데 초림예수님께서 3년 밖에 이루지 못했던 37년 복음의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교회 운영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이원순 목사는 "그때 교회에서 제공하는 밥은 정부미에 보리쌀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어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났지만

그 밥도 그렇게 맛이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식사를 하면 누군가는 그 쌀을 사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모든 짐을 어머니께서 홀로 지셔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쌀이 다 떨어져 본인의 끼니는 굵으셔도 식구들에게 고구마,감자를 삶아서라도 넉넉히 대접하셨다. 삯일을 해서 생긴 돈으로 교회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재래시장까지 가서 장정 둘이 들어도

무거운 감자포대를 머리에 이시고 교회까지 걸어오시곤 했는데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였지만 그때는 그것이 현실이였다" 고 회고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빌립보서2:6~8>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람되어 오셨기 때문에 죽기까지 낮추시고 인생들에게 복종하며 본을 보이셨다.

가장 가슴 아픈 성구 말씀과도 같이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모습으로 낮추실 수 밖에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묵묵히 복음의 길을 걸어가셨다. 오직 의인을 구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보다 더 작은 어린양인 죄인들을 찾아서 구원주시기 위해 오늘도 겸손을 가르쳐주시고 서로서로 섬기는 예법을 가르쳐 주신다.

초림때 하나님의거룩하신 희생을 깨닫고 사도들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령시대 어머니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은 사마리아 땅끝까지 전해질 만큼 온 우주에 비춰지고 있다.

 

 

◈ 하나님의교회 부흥의 역사

 

 1985년도

안상홍님 승천

 1988년도

서울올림픽 해

 1996년도  1997년도  2010년도  2011년도  2012년도

 2013년12월

기준

 교회수 13개 10배 증가 

 기하급수적

성장세

 미국

로스엔젤레스

선교사

한 가정 파송

 해외150개 나라

1100개 교회

 150개 나라

1900개 교회

 150여개 나라

2200개 교회

 175개 나라
 1,000여 명  10,000명  100,000명  해외선교시작   1,350,000명  1,450,000명  1,750,000명

 2,000,000

(200만명)

 

 2014년을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는 50주년을 맞이하며 단일교단으로는 성도수 2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나님의교회의 성장세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이론적인 증가율을 이루고 있다.

가히 사람의 능력으로 이렇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계명과 성경 중심의 신앙과 어머니하나님의 헌신,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사랑을 깨달은 자녀들은 그리스도의사랑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14년도는 하나님의교회 50주년 희년을 맞아서 하나님의백성들이 돌아오는 해로서 가장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품으로 안길 것이라는 예언을 믿고 복음의 나팔을 불고 있다.